브레인포그 폐인에서 정상인으로…(1)

오늘은 브레인포그에 걸린 후 폐인에서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온 과정을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브레인포그 폐인에서 정상인으로

브레인포그 폐인에서 정상으로 되돌아오기까지

사람마다 브레인포그가 생기는 이유는 다양할 것입니다. 물리적인 신경압박, 지나친 스트레스, 어린시절 커다란 트라우마, 인간관계 이외에도 많을 것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견해는 브레인포그가 생긴 배경에 대해  한국사회의 특유의 비교문화, 경쟁문화가 발단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어른들에 의해 친척들과 비교를 당합니다. 누가 더 키가크나, 누가 더 공부를 잘하느냐에 따라 어른들이 무의식적으로 우열을 정합니다.

그리고 학교에 들어가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우열을 정하고 서열화합니다. 서로를 비교하는 문화를 은연 중에 배웁니다. 학교에서부터 등수를 정하는 것부터가 그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낍니다. 상대와의 비교를 통해 본인이 보잘것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한 것은 나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고등학교를 진학한 시점부터 지옥의 입시가 시작됩니다.  아침 7시에 등교를 한 후 오후 4시가 되면 수업이 끝나고 보충수업을 하고 밤 9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 저녁 9시~ 12시까지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취침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숨막히는 생활동안 간간히 PC방,노래방으로 놀러다니며 잠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당시 학교생활이 고통스러웠으나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저는 그 당시 어렸고 이게 당연한 일인것처럼 매일매일 버텼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노력에 비해 수능성적이 좋게 나오지 않아 지방대학을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대학진학이라도 한것에 안도한다고 해야할까요?

어른들 말마따나 대학을가면 그 다음부터는 편해진다고 말씀하였던 것을 털썩같이 믿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학교 3학년부터 수능보다 더 지옥같은 일들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취업경쟁이죠.

그 이후 학점관리하고 토익성적관리하고, 자격증 준비하느라고 꽤 많은 시간을 공들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이 시기에는 수능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말그대로 2~3시간씩 자면서 토익성적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부터 머리멍함이 시작되었습니다. 두뇌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두뇌가 갈려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쟁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더욱 애를 썼습니다.

이 시기에 슬슬 스트레스를 받아 탈모가 진행되어 탈모약을 먹었습니다. 탈모약의 부작용이라고는 발기부전밖에 없었고, 제가 대머리가 될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탈모약을 열심히 먹었습니다. 그 당시에 브레인포그라는 개념은 아예 몰랐었고, 약을 먹으면 약간 머리가 멍한 상태가 심해졌습니다.

다행히도 젊어서 그런지 딱히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단어가 읽히지 않고, 우울감이 생기는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무거워지고 머리가 멍했습니다. 그냥 만성피로증후군이겠거니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브레인포그는 제 인생을 발목잡았습니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머리속에 지식이 안남더군요. 다른 경쟁자들은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성적이 잘 나오는데 비해 저는 성적이항상 정체되었습니다. 저의 경쟁자들은 모두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저는 시험에 계속 낙방하였습니다. 그 이후 브레인포그 증상은 더욱 심해지고 시험불합격과 겹쳐 우울함과 낮은 자존감이 지속되었습니다.

그 시기에는 이미 브레인포그가 극에 달해있어 3초만 지나면 전부 잊어버리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닭머리가 된것처럼 일상생활이 불가능하였습니다. 시험에 떨어지고 우울함과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 브레인포그까지 겹쳐서 3달동안 집 밖을 나오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35살 즈음 직장에 취직하는데 직장스트레스와 퇴근 후 자격증 시험준비로 인해  4시간씩 잠을 잤습니다. 가뜩이나 브레인포그로 인해 머리와 몸이 내것이 아니었는데 과로를 지속하니 심각한 증상이 찾아왔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치매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못하고,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는 상태가 된 것이지요.

그 이후 브레인포그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것저것 노력을 했었던것 같습니다.

저의 솔직한 심정으로  자살을 결심할 정도였습니다. 2012년도였는데 브레인포그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아 무슨병에 걸렸는지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냥 머리가 계속 멍하고 몸은 무겁고 피곤하여 삶의 질이 최악이었습니다. 무언가 문제는 있는것 같은데 원인이 뭔지도 모르겠고, 몸은 계속 망가져가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 고독사일을 업으로 하셨던 지인이 하루 도와달라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고독사 현장을 갔었는데 방안에는 온통 시체썩는 냄새와 구더기로 가득했습니다. 변사체에서 나오는 피와 기름이 집안 전체를 가득메웠습니다. 집안분위기는 음산하고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그 날 하루를 고독사현장을 정리하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싹 사라지더군요.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고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니 두렵고 남은 방법은 오직 치료였습니다. 다만 브레인포그를 어떻게 고칠것이냐 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의사도 원인을 모른다고 하고, 제 자신이 이게 무슨 증상인지, 무엇부터 시도를 해야하는지 몰랐습니다.

치료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거치기를 5년이나 지속하였습니다.  음식을 조절한다고 하여도 어쩌다가 한번 피자나 치킨을 먹으면 멈추지 못할 정도로 폭식을 하였습니다. 운동도 적당히 하면 브레인포그증상이 완화되었다가, 지나치게 근력위주로 하니 오히려 브레인포그 증상이 심해졌습니다. 명상원도 여러곳을 다니면서 저에게 맞는 명상원을 찾느라 비용을 많이 사용하였니다.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한약을 최소 3개월씩  복용하였습니다.  돈을 상당히 지불하였습니다. 술과 담배를 참아가며 사회생활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과정을 모두 거쳤습니다.

브레인포그(BRAIN FOG) 극복 후기 – BRAIN FIX, NUTRITION (jjanggyu.co.kr)

저의 끈질긴 시도는 하늘도 감동하였는지 브레인포그 치료가 슬슬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머리가 맑고 깨끗해지는 느낌은 정말이지 지금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제게 두번째 인생이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충실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인생은 고난입니다. 브레인포그를 치료하니 다음문제들이 또 생기더군요. 물가상승, 내집마련, 결혼등의 문제말입니다. 브레인포그가 사라진 지금 비교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수월하였으나, 정상인으로 돌아와 정상생활을 계속하니 이것도 적응이 되었는지 더 이상 기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번 브레인포그를 걸렸다가 되돌아오니 평범하게 사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항상 되뇌이면서 “나는 행복하다”고 주문을 합니다.

여러분들도 브레인포그를 걸린신후  평범한 삶을 간절히 원하실 것입니다. 어쩌면 브레인포그가 걸린상태로 평생을 살아야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를 절대 방치하지 마십시오. 저도 브레인포그가 회복되어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오니 그 때 제 자신이 폐인처럼 지내던 시간들이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모릅니다.

물론 브레인포그가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면 치료에 희망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든 시도하시고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세요. 그리고 다시 정상생활을 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감사합니다.

브레인포그증후근 증상과 극복방법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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