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삶의 원동력을 상실합니다. 빚, 이혼, 상대적박탈감등에 의해 자신의 현실을 비관하며 자살을 기도합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경우 브레인포그로 인해 우울감과 자존감저하로 나타나 삶의 원동력을 상실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출산률 꼴찌,자살률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저도 때때로 인생이 고통이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부모님을 원망하고는 했습니다. “도대체 왜 태어나서 이런 모진 시련을 당해야하나”라는 생각을 자주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나라는 중학교를 올라가면서부터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내 옆에 친구들이 동료라기보다 경쟁자로 인식되는 순간 마음의 벽이 생깁니다. 예를들어 저도 중학교시절을 되돌아봤을 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제 성적이 급등하면 친구들이 저를 적대적으로 대합니다. 그 당시에는 친구들이 저를 시기하기 때문에 제게 공격성을 보인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저를 질투하기 때문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제가 교사가 되었다고 하니 축하해주는 친구들이 한명도 없습니다. 오히려 다들 씁쓸해하거나 말도 안된다는 얼굴표정을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이후 친구들과 연을 끊게 되었습니다. 내가 잘되는 꼴을 못보는 사람은 친구관계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열심히 노력했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부터 브레인포그가 찾아왔습니다. 브레인포그에 걸리면서 무엇이든 제대로 해내는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해낸다고 하여도 축하해주는 사람은 부모를 제외하고 없더군요.
그때쯤 브레인포그와 싸우고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나를 끌어내리기위해 온갖 분탕질을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실패할때마다 미소를 짓던 그들의 얼굴표정을 보면서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겼던것 같습니다.
누구나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좁히는 것은 좀처럼 쉬운일이 아닙니다. 항상 보이지 않는 경쟁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갑질로 인해 통제받는 생활을 했을때 스트레스는 이루말할 수 없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고 하여도 한번의 실수로 인해 공든탑이 한꺼번에 무너지기 일쑤였습니다.
사람에게 행복을 기대하는 것은 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타인이 잘 되는 꼴을 못보는 사람들의 성향을 알아버리자 그들과 정서적 교감을 하는것이 어느순간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일이 안풀리면 위로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잘 되었을때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요?
그 이후부터 노파심때문인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잘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브레인포그가 찾아왔습니다. 머리가 멍하고 힘이 쭉빠지면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타의든 자의든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경쟁사회에서 타인에 의해 끊임없는 공격을 막아야했으나 브레인포그로 인해 자꾸 실수를 하여 직장에서 입지가 상당히 좁아진상태입니다.
이때부터 외부에 의해 끌려다니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회사나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을 해도 본전이지만 하나라도 실수하면 열심히 일한것도 전부 물거품이 되는 상황을 맞이하곤 합니다. 회사에서는 “너말고도 일할사람많으니 그만둬도 상관없다”라는 식으로 대합니다.
의욕을 상실했습니다. 도대체 뭘 위해 열심히 사는지도 모르겠고, 나의 힘듦을 사람들에게 위로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들이 제게 위로를 하는것이 제게는 위선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해 브레인포그로 인해 우울감이 심해졌고 인간관계의 고립감과 겹쳐 자살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매일 끊임없이 경쟁하고 상대방을 끌어내리는 그런 일상이 지속된다면 매일매일이 지옥같을 것입니다.
예를들어 대학입시부터 경쟁을 합니다. 어찌보면 정서적으로 깊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시기가 고등학교 시절입니다. 그러나 상대방과 경쟁을 하고 적이라고 인식되는 순간 진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어렵습니다.
이 밖에도 살인적인 공부량과 업무량도 한몫한다고 봅니다. 가뜩이나 감수성이 예민한시기에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대학입시를 공부해야하며, 정서적으로 의지할 사람이 없다면 삶이 벅차게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사회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쟁하고 서로 비교하는 사회에서 좋은 직장을 취업하기 위해 동료들과 학점경쟁을 해야합니다.
좋은직장에 취직하는 순간 학창시절의 모든 고생이 끝났나 싶었는데 고생은 지금부터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살인적인 업무 스케쥴을 볼 때 “내가 이렇게 살려고 여지껏 죽을만큼 공부했나”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를 우울할 틈도 없이 매일 바쁘게 살아갑니다.
이에 더해 비교문화가 우리를 한껏 부추깁니다. 그렇게 소수의 잘난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적박탈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바깥에 나가면 기죽는 것을 싫어하기때문에 명품백이나 외제차로 자기자신을 포장합니다. 실제 자신의 월급으로 감당하기 힘든것들이라도 보여주기식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흑수저타령을 하며 계층상승의 한계를 느끼고 자신의 인생을 한탄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 갑을관계로 인해 기분상하는 꼴을 많이 경험합니다.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한탕 제대로 말아먹기도합니다.
출산율이 낮은것도 계층의 대물림이 크게 작용한듯합니다. 자신이 고등학교 때부터 치열하게 공부했으나 노력에 비해 적은 보상이 주어진다면 살맛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힘든 삶을 자신의 후대에게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풍족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데 이를 자신의 후대에게 대물림을 주고 싶은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